☀️ 밝고, 맑고, 고요합니다.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인삿말입니다. 스치는 순간마다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일깨워 주는 말이라 들었습니다.
오늘 이 말을 꺼낸 것은, 제 삶이 익숙한 자리에서 한 발 벗어나 전혀 다른 곳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 균형을
잡아보려 애쓰며,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하루 또한 평온하기를 바랍니다.
☘️ 낯선 길 위에서
사람의 길은 종잡을 수 없다고 하죠.
우연이 겹쳐 저는 코펜하겐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낯선 언어와 환경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장학생으로 선정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망설임 없이 비행기표를 끊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는 답답한 감각 속에 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발걸음만 흉내 내고 있었죠. 그래서 더 멈추지 않고, 어디든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 끝이 어디일지는 몰라도, 가만히 서 있기
보단 낯선 길이라도 걷고 싶었습니다.
✈️ 코펜하겐에서의 첫 주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를 타고, 낯선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코펜하겐은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더 많은 도시였습니다. 느려질수록 더 빨라지고, 여유로울수록 더 많이 보게 되는 곳이었죠. 아이들
과 동물들이 눈치 보지 않고 공존하는 모습,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이동을 돕는 세심한 설계. 한국에서는 왜 이렇지 못할까, 이제라도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낯선 언어와 어색한 몸짓 속에서도 마음 한켠은 평화로웠습니다. 속하지 못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 순간들이
제 안에 켜켜이 쌓여감을 느꼈습니다.
✨ 익숙한 낯섦
제가 다닌 풀무(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는 덴마크 교육에서 영감을 받아 세워진 학교입니다.
공동체와 전인 교육, 사람과의 만남을 중시하는 정신이 여기에 깃들어 있지요. 그래서인지 덴마크의 폴케호이스콜레 수업은 낯설
면서도 동시에 가장 익숙하게 다가왔습니다.
서툰 영어와 낯가림으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사람을 중심에 둔 수업과 함께하는 구조는 교육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했습니다.
짧은 한 달이지만, 이 시간을 통해 제 안의 무언가가 바뀌리라는 예감을 얻었습니다.
✒️ Thank you
새로운 장소에서의 시간은 길면서도 짧습니다.
하루하루 많은 것을 쌓아가지만 돌아보면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졸린 몸을 붙잡고 일기를 썼습니다. 모든 순간을
꼭꼭 삼켜두고 싶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정성과 노력, 그리고 마음 덕분입니다. 다시 한번 큰 빚을 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삶을 통해 언젠가 이 빚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돌려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덴마크 보세이에서,
윤 드림